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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
최성임
2024.10.27 - 2024.11.24
갤러리실[室]
저는 시각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성임입니다. ‘시각예술가’라고 명명하는 것은 불확실하고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덩어리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눈앞에 드러내고 가리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작업에 대한 믿음이 제 작업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보여지고 드러나는 것이 실체의 전부는 아니지만, 작은 부분을 통해서 그 너머를 상상하고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첫 개인전 이후 지난 활동 기간은 가사와 육아의 노동과 더불어 ‘작업하기’를 지속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였고, 시간과 예술노동, 효과적인 동선과 작업 공간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여성, 육아, 예술 노동 등의 개념적인 맥락뿐 아니라 ‘작업하기’의 지속성을 위해 시간이나 공간 확보 같은 실천적인 행동을 작업 속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작업의 안과 밖 어느 쪽의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치며 작용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설치’는 저의 작업 환경과 삶의 모습 속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한 도구입니다. 자유롭게 자리를 접었다가 펼치며, 현실 속의 상상과 일상의 전복을 실천하기에 적절했습니다. 또한 ‘정원 가꾸기’처럼 매일의 노동력,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시간, 안과 밖의 연결과 차단, 다른 환경과의 조우, 동선의 고려, 수수께끼와 미로, 인문학적 세계관의 부여 등을 생각하고 작업 속에 녹이기 좋은 매체였습니다.
그 속에서 제 주변의 사물의 물성들이 작업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주변의 자리, 공간 속 사물과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가 상징과 풍류가 되고, 작업실과 부엌, 생활의 공간과 예술의 자리를 펼치고 만들었다 접으며, 시간이 담긴 설치, 설치 조각 작업을 했습니다. 자연스레 건축의 물리적인 공간과 은유적 상징적 의미로서 ‘집’ 은 제 작업의 주요 화두입니다.
집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구축적인 형태를 가진 초기 작업의 안과 밖의 경계를 지나 고립이나 삶과 죽음의 상징과 ‘몸’이라는 자전적인 이야기도 담으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업의 훈련 장소이자 자신의 최선의 방어막인 ‘집’의 의미가 확장되고, 시간이 지나 개인적 삶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작업도 다른 지점들을 만들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작업은 시간 노동을 통해 조형성을 획득하고 사물의 군집이 구성하는 공간은 그 자체로 미적 경험을 선사하며, 현대인의 생활세계에 균열을 내며 인간과 생명, 장소와 관계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게 어느 자리, 장소에 정박시킨 작업들은 자신의 자리를 재정립하려는 창조적 충동 사이의 긴장이 작동하며, 삶을 다잡는 결의나 깨어있는 태도도 느껴집니다.
대표적인 개인전으로는 2023년 온수 공간에서 진행된 《눈을 감아도 보이는 툭 툭》, 2022년 이풀 실내정원의 《오가닉 스펙트럼》, 2021년 송은아트스페이스 《잠시 몸이었던 자리》, 2020년 룬트 갤러리의 《황금 방》, 봉산문화회관 《강을 건너는 방법》, 디스위켄드룸의 《발끝으로 서기》, 2018년 성북예술가압장의 《집이 있던 자리》, 2016년 미아리고개 하부공간에서 이루어진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 《24》, 2014년 송은아트큐브의 《미묘한 균형》등이 있습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2024년 더레퍼런스 《Drawing with the Light》, 2022년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 《휘릭, 뒹굴~탁!》, 더현대서울 ALT1 《I AM GROUND》, 송은 문화재단 소장품전 《Past.Present.Future.》, 2021년 광주시립미술관 《나도 잘 지냅니다》, 우양미술관 《감각의 숲》, 2020년 김중업 건축 문화의 집 《모두의 집》, 세화미술관 《손의 기억》, 2019년 세종문화회관 야외조각전 《산려소요》, 2018년 옛 채동선 가옥 《두 개의 집》, 아모레 퍼시픽 공공미술프로젝트 《Apmap 2018 Jeju》 등이 있습니다.
맨드라미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소재로, 작가의 작업에서 일상과 예술의 연결 지점을 만들어 주는 매개체로 자주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피를 흘린 상처 부위에 맨드라미 꽃을 대고 있었던 경험에서 맨드라미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코피나 생리혈, 상처의 핏방울 등 일상의 균열을 일으키는 붉은 색들을 다양하게 표현하며, 자연과 인공조명, 망과 알맹이, 안과 바깥, 따뜻함과 차가움 등의 개념을 연결시키나 충돌되는 낯선 지점을 통과합니다.
또한 낮과 밤의 시간에 따라 잎과 꽃봉오리를 여닫는 식물의 수면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집 주변에서 많이 보았던 식물, 천장의 흔들리는 불빛, 집 안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덩어리, 벗어둔 옷가지들을 연상시키는 작업은 새어 나오는 불빛과 흘러내리는 실로 수상한 덩어리를 만듭니다. 작품의 빛과 그림자, 덩어리와 여백으로 날이 선 풍경을 만들며, 관람자 각자 내면의 이야기를 불러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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